기사제목 [특집-최초공개]국가에 의해 강제수용 된 선감학원 피해자 4,691명에 대한 국회 입법청원·인권침해 보고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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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최초공개]국가에 의해 강제수용 된 선감학원 피해자 4,691명에 대한 국회 입법청원·인권침해 보고서 공개

기사입력 2018.02.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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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뉴스 주윤 기자]=선감학원(仙甘學園)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경기도 부천군 소속의 선감도(현재는 안산시 대부면 소속)에 소년 감화원입니다. 일제는 도심의 부랑아를 섬에 가두고 태평양 전쟁에 이용할 후방병력으로 훈련시켜 탄광이나 금속제작소 등에 ‘취업’이란 이름으로 강제동원 했습니다. 그러나 선감학원은 해방 이후에도 경기도 관할로 이관되어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1982년이 되어서야 폐쇄되었습니다.

해방 후 선감학원 운영 실상은 더욱 끔찍한 것으로, 강제로 끌려온 소년들은 축사, 농사일, 양잠 등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고, 폭행과 노역을 피해 아이들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려다가 익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현재까지 섬 내의 야산에 소년의 시신 수백구가 암매장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은 2018년 2월 5일 국회에 <선감학원 아동 국가폭력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입법에 관한 청원>을 제출하였습니다. 이번 청원에는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여당 간사로서 오랫동안 과거사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해 온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소개의원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진선미 의원은 선감학원 문제를 향후 과거사법 관련 논의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 안산에 있던 강제수용소인 ‘선감학원’에 강제수용되었던 피해자들의 참혹한 실상이 처음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경기도의회는 2016년 2월 24일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같은 해 3월 4일에 ‘선감학원 희생자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7년 상반기에 진상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특위 활동만으로는 과거 정부 기록을 확보해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는데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위 진상조사 이후 경기도는 최근까지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조사를 진행하였고, 제출된 최종보고서는 선감학원 내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중요한 증거이며, 퇴원아대장을 분석한 각종 통계자료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경기도가 제출한 위 보고서는 도청 기록관에 보관 중인 선감학원 퇴원아대장 4,691건(1955년부터 1982년까지, 퇴원연도 미상 120건 포함)을 열람하고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입니다
 
이번 보고서 제출은 선감학원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포괄적 과거사 해결을 목표로, 지난 2010년 활동을 종료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개와「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감학원 사건과 같이 국가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부랑아’라는 낙인을 씌워 야기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과정에서도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절실한 사건입니다.
 
이번 선감학원 기초 조사와 관련하여 경기도와 경기도의회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선감학원 입소자의 전반적인 실태가 드러난 만큼 보다 더 구체적인 피해실태 조사와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 그리고 오늘로 93일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하루속히 처리되어 조금이나마 맘이 편해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여야의 대승적 협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윤기자 ju-yun00@hanmail.net>
 
선감학원사건의 개요
 
선감학원은 1942년 5월 29일 일제 말 조선소년령 발표에 따라 안산의 선감도에 설립된 감화원으로, 해방 이후 1946년 2월 1일 경기도 관할기관으로 이관된 이후,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 도심내의 부랑아를 강제로 격리․수용하여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목표로 1982년까지 경기도에서 직접 운영하여 왔다.
 
하지만 당초 목표와는 다르게 기초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농사기술의 습득과 자급자족이라는 핑계로 각종 노역과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탈출을 기도하거나, 구타, 영양실조 등 수많은 어린 소년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집주소를 모른다거나 옷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또는 구두닦이, 신문배달을 하다가 단속공무원들에 의해 강제로 납치된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부모나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감학원에 수용된 이후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고, 선감학원을 나가기 위해서는 탈출을 택하거나 성인이 되어 퇴소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이후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은 원생 10명 중 1명 정도로 그마저도 중간에 퇴학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으로 볼 때, 선감학원 원생들에 대한 기초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피해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축사, 염전, 뽕밭 등에서 노역을 하였으며, 반면에 제공되는 식사는 매우 열악하여 늘 배고픔에 시달렸으며 들에 나는 열매, 들풀, 곤충, 뱀이나 쥐를 잡아먹기도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은 선감학원이 운영하는 염전 등에서의 강제노역 외에도 당번이라는 직책을 세워 선감학원 직원들의 관사 관리를 비롯해 개인적인 농작물재배와 노역을 강요당하였다.
 
이렇듯 배고픔과 노역을 견디다 못해 선감학원을 탈출하려던 원생들은 선감도를 건너가다 바다에 빠져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탈출에 성공한 원생들도 이웃 섬의 주민에게 발각되면 다시 선감학원으로 돌아오게 되거나 그 주민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야만 했다고 피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선감학원의 실태 조사
 
1. 선감학원 원아대장 분석

경기도는 선감학원 원생들의 퇴원아대장 49개 철을 보존관리하고 있고, 전체 퇴원아대장을 열람한 결과, 퇴원년도가 미상인 원아대장 120건, 1955년부터 1982년까지 28년간의 원아대장 4,571건 등 총 4,691명의 원아대장이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01.jpg▲ 연도별 퇴원아대장 수(실제 퇴원년도 기준)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보면, 퇴원년도 기준으로 1964년 560명, 1962년 508명, 1963년 332명 등으로 주로 196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부랑아 단속 및 수용이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입소 당시 연령을 보면, 8~13세가 1,920명(40.9%)으로 가장 많았으나 7세 이하도 62명(1.3%)이나 수용되었다.
  
12.jpg▲ 입소 당시 연령
 
원생들의 본적지 또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증언하는 것과 같이(“서울, 경기, 인천지역의 아동들을 경찰과 공무원이 거리에서 잡아들여 선감학원으로 보내졌고, 부모,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가족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무조건 수용소로 보내졌다”) 인천을 포함한 경기도를 본적으로 하는 원생이 1,410명(30.1%), 서울이 507명(10.8%)으로 가장 많았으나, 전남(광주 포함) 381명(8.1%), 충남(대전 포함) 355명(7.6%), 경남(부산 포함), 304명(6.5%), 전북 213명(4.5%), 강원 211명(4.5%), 경북(대구포함) 167명(3.6%) 등으로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이 잡혀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3.jpg▲ 원생 본적지 구분
 
입소기간에 있어서도 3개월 이하가 1,508명(32.1%)으로 가장 많았으나, 3~5년 이하 310명(6.6%), 5년 이상 171명(3.6%)으로 장기간 수용된 원생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14.jpg▲ 원생 입소 기간
 
 
2. 선감학원 사망자

피해생존자 다수가 원생 중 상당수가 선감학원을 헤엄쳐 탈출하려다 실패해 익사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으며, 직접 원생 매장에 참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래는 위 보고서에 실린 생존자들의 사망자 매장 관련 증언 중 일부이다.
 
“(시체가) 떠내려온 것을 건져다가 일곱∼여덟 명이 선생님 한 분 입회하에 공동묘지는 너무 머니까. 당가에 실어서 산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우리가 직접 묻은 기억은 있는데, 정확히 산이 여러 군데 산이 높고 그러니까. 어느 봉우리인지 기억이 잘 안나요.”
- 이○○(1958. 1966〜1974, 2017. 10. 25. 진술)
 
“세 사람을 목격했어요. 3명 죽었는데 2명은 초창기 죽고, 하나는 직접 묻었으니까. 이름은 모르고 별명은 ‘쫀드기’... 여름에 수영치다가 저수지에서 빠져서... 불도, 탄도 넘어가는 끝 공동묘지 있잖아... 우마차 끌고 간 거지요. 건빵 뿌려주고.”
- 전○○(1961. 1975〜1979, 2017. 10. 25. 진술)
 
“죽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어디로 죽어서 누가 몇 명이서 사람들을 들고 간다는, 묻으러 간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 묻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낮게 묻어서 그게 많이 쓸려 내려갔을 것 같아요.”
- 국○○(1961. 1969〜1972, 2017. 10. 25. 진술)
  
위 보고서에 의하면, 복수의 생존자들이 사망자로 거론한 ‘여○○’라는 원생의 원아대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여○○은 선감학원을 탈출하려다 익사해서 시체가 열흘만에 떠올라 해안가(고래당)에 묻었다고 한다. 피해생존자 김○○(1949)은 여○○을 자신이 직접 묻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실제 확인해 본 여○○의 원아대장에는 ‘무단이탈 제적’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사망으로 기록된 경우도 24건에 불과했고, 이 중 13건은 사망사유도 기재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볼 때, 원아대장 상에 나타난 사망자 수를 실제 사망자와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적어도 무단이탈자 중 상당수가 사망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선감학원에서 탈출한(무단이탈 표기) 833명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15.jpg▲ 퇴원아대장 상 퇴원사유 현황
 
2. 선감학원 사망자 유해매장지
 
보고서는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희생자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6곳을 확인했으나, 이중 4곳은 이미 방조저 건설로 인한 도로 개설, 펜션단지 조성, 포도밭 등 경작지 조성과정에서 대부분 지형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했다. 나머지 2곳 중 가장 많은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감동 산37-1번지 일대 중 벌목이 이뤄진 지역 내에 분포하는 분묘 현황을 GPR탐사와 GPS측량 조사를 통해 파악한 결과, 이장묘를 포함하여 135기의 분묘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의 사면부에도 약 35기 이상의 분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보고서는 “추정 수치는 GPR 탐사가 전 영역을 커버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GPR 탐사의 특성상 토양 내부에 묻힌 이상체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유해 존재여부에 대한 실질적인 파악은 발굴조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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