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특집] 故 구지인 양, 2016년에 작성한 1차 강제 개종 사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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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故 구지인 양, 2016년에 작성한 1차 강제 개종 사건일지

(전라남도 장성 모 수도원에서 44일간 감금)
기사입력 2018.01.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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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故 구지인 양이 2016년에 작성한 1차 강제 개종 사건일지
(전라남도 장성 모 수도원에서 44일간 감금)
 
구지인.jpg
 
본인은 2013년 9월 23일 신천지예수교에 입교하였으며 전남대학교 특수교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25살(만 23) 구지인 이라고 합니다. 본인은 부모님, 언니와 함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살고 있었으며 학교는 휴학 중인 상태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곡 동 장로교 산O교회에 출석하고 있으셨고,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납치 전남 장성의 모 수도원 감금
2016년 7월 23일(토) 오후11시 저는 언니와 함께 충장로 영화관에서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본 후 집으로 귀가하려고 아버지 차에 탑승했다가 부모님과 언니에 의해 장성에 위치한 모 수도원으로 납치되어 감금된 상태에서 주O교회 박0철과 임O기에게 개종 강요를 받고 2016년 9월 4일(일) 새벽 2시에 탈출하여 44일 만에 감금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언니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고 언니와 함께 밖에서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2016년 7월 23일에도 영화를 예매해 두었다는 언니의 말에 저는 저녁 7시 경에 시내에서 언니를 만나 밥을 먹고 저녁 9시에 영화(부산행)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언니가 마침 부모님이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아버지 차에 올라탔습니다. 차에 타자 엄마는 조수석에서 몸을 뒤로 돌려 저에게 “언니가 사준 가방과 옷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언니가 사 준 가방을 엄마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제 핸드폰을 빼앗기 위해서 제가 원래 매고 있던 가방마저 조수석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차량이 이동 중이었는데도 엄마는 갑자기 뒤로 자리를 옮겨와서 언니와 한 팔씩 제 양팔을 붙잡아 저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제 속옷과 바지 주머니를 구석구석 뒤지며 몸 속 어딘가에 위치 추적기가 붙어있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어이가 없고 두려웠습니다. 정말로 위치추적기가 없다면서 엄마와 언니의 팔을 뿌리쳤습니다. 그렇게 저를 태운 차는 굽이굽이 어두운 시골길을 돌아서 자정이 다된 늦은 시간에 장성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내리기 전에 언니와 엄마는 우리 가족이 정말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도착하자 수도원 ‘사제관’이라고 하는 방의 문이 열려있었고 가족들은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도원에 감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도원에는 1명의 원장수녀님과 10명의 수녀님으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수도원의 물품을 담당하는 수녀님 등 각자의 역할이 분담되어져 있었습니다.
 
감금 기간 동안 저희 가족은 ‘사제관’ 이라는 방을 사용하였는데 ‘사제관’ 방은 제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에는 텔레비전 밑 서랍 안에 있는 수도원 전화기로 엄마가 수녀님들과 통화로 문의해서 해결 했습니다. 그 전화기는 수도원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한 내선 전화기였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한 이틀 뒤에 ‘사제관’ 방의 화장실을 고쳐주러 두 명의 수녀님들이 오셔서 “너가 지인이구나~ 편히 쉬었다가라” 라며 제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너가 여기에서 3번째로 교육(개종교육) 받는 사람이야. 수녀님들도 좋으시고 여기 장소 구하는 데 힘들었다.” 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창문 밖은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탈출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관’이라는 방으로 들어간 후 가족들은 모두 앉아 “우리가 왜 여기에 온 것 같냐”고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 때문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은 저에게 “의외로 부인하지 않는다, 솔직히 네가 더 반항할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때 그 쪽지(2016년 3월 경, 새 가족 친구가 저에게 써 준 것으로 (구역원이 전도를 부탁하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역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 쪽지에 있는 내용도 저에게 쓴 것이 맞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금된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신천지교회를 그만 둘 생각이었다.” 고 했습니다.
 
 
강제 개종 브로커 박O수 집사
 
그러나 엄마는 “그런 마음이 있어도 마음대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며 “어차피 너도 다 알고 있을 테니 교육을 받자”고 하였습니다. 빨리 감금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교육을 받겠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교육을 받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박O수 집사’라고 부르는 남자가 수도원으로 찾아왔습니다.
 
박O수 집사라는 남자는 약간 건들건들 거리며 조폭 같은 모습이 왠지 신앙인다운 모습은 한군데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박O수 집사는 부모님과 인사를 한 후 저에게 “신천지 다닌 지 얼마나 됐어? 몇 살이야? 졸업은 했어? 예수님이 영으로 와 육으로 와?”라고 처음 보는 저에게 거침없이 반말로 하였고 몹시 불쾌 했지만 저는 “신천지에 다닌 지 3년 정도 됐어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간단한 대화 이후 박O수 집사는 저에게 교육동의서를 내밀며 “잘 읽어보고 싸인 해”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제개종교육 동의서의 주된 내용은 1. 교육은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다. 2. 교육받는 사람이 그만두고자 하면 어느 때라도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는 교육이다. 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박O수 집사란 사람은 “이 교육을 듣고 신천지에 가겠다고 하면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그러니 교육을 듣고 객관적으로 비교해봐라. 그 이후로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감금시켜놓고 자유대로 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의서에 싸인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여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동의서에 싸인을 하자 박O수 집사는 감금되었다 나간 사람들이 고소하는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동의서를 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해서 좋네.”라고 이야기하며 싸인을 받자마자 바로 돌아갔습니다.
 
강제 개종 시작
 
박O수 집사가 강제개종 교육 동의서에 싸인을 받아간 이후 3~4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부모님께서는 교육을 해 주실 분이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강제 개종 사업자 광주 주O교회 박O철 간사
 
점심을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오후 2:30 쯤 이단상담소 주O교회 박O철 간사가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은 박O철 간사가 오기 전에 미리 수도원 문을 열어놓고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 박O철 간사에게 먼저 인사를 하셨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거실에 있는 탁자 맞은편에 박O철 간사가 앉아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박O철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지인자매~ 저도 지인자매 마음 잘 알아요. 나도 그 자리에 있어 봤으니
까. 저는 신천지 도마지파 출신이에요. 거기 있을 때는 신천지 축구 선수도 했었고 재
밌게 지냈어요. 저는 어떻게 나오게 됐냐하면요. 저도 자매처럼 구역장 일을 하면서 거
기 있을 때 정말 열정적으로 신앙 했어요. 근데 부장님께 어떤 비밀을 이야기했는데
말하지 말고 3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을 회장님께 바로 해버려서 전체적으로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홧김에 신천지 안 다니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말씀은 맞으니까
라는 생각이 있었고, 도마지파에서는 나는 절대로 개종되지 않을 사람이니 오히려 개
종 교육 듣고 오라는 식으로까지 이야기했어. 거기서 나를 엄청 믿은 거지. 그리고 그
때에 가족과 함께 다니는 교회에서 신천지 리스트를 불러줬는데 내 이름이 단상에서
불러져서 어머니가 개종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은 시기이기도 했거든. 그래도 일단 들은
거 열심히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임O기 전도사에게 듣다 보니까 끝내는 신천지가 틀리
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근데 나는 신천지 탈퇴 후에 죄인처럼 지내는 것이 싫어 전주에서 개종된 사람들을 모
으기 시작했고 나는 전주에서 최초 안티활동을 한 사람이지. 1년에 6-70명을 내가 빼
냈으니까. 그리고 인도자인 아내를 신천지교회에서 빼내고 또 내 절친한 친구까지 내
가 다 빼냈어요.
 
그리고 박O철 간사는 “교육 받는 자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 자매가 제일 힘들 것이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의 마음을 이해하는 척 하였습니다.
 
신천지교회를 비방하기위해 조작하고 짜깁기한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으로 박O철 간사가 가족들에게 마치 동의를 구하듯 이야기를 하고,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은 인상을 찌푸리거나 비웃는 것을 보니 정말 찢어질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박O철 간사는 교육을 할 때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족들을 자주 쳐다보며 질문을 하곤 하였습니다. 교육받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분위기 조성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제가 가족들의 기대만큼 개종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언니는 가만히 있는 제 모습이 답답했던지 “여기에 오기 전에 이단상담소와 상담을 하면서 개종교육을 할 때에 그 교육 내용 자체에 깨지기 보다는 보통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깨져야 개종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하면서 저에게 교육이 끝나고 나면 교육 받은 소감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습니다.
 
지옥 같은 감금장소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임O기, 박O철이 주장하는 거짓교리에 대해서 인정하는 척 연기를 해야만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개종이 된 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들었지만 이제는 나도 틀린 것을 좀 알 것 같다. 힘들다.” 고 울면서 이야기를 하니 박O철 간사는 가족들에게 “이제야 가까이 온 것 같다.” 고 이야기를 하면서 “힘든 거 이해한다. 교육받고 나서 신천지교회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좀 더 이야기 해 달라.” 고 했습니다.
 
교육이 계속 진행이 되면서 저는 ‘가족들에게 빨리 개종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이곳에서 나가자.’ 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 후로 진행되는 박O철 간사의 교육을 최대한 잘 듣는 척 하려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교육이 끝나고는 거짓으로 지어낸 느낀 점을 말하면서 울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자 저와 한 달 차이로 개종이 된 맛디아 지파에서 구역장을 했던 자매(박O은)를 데리고 왔습니다. 자매는 저와 함께 박O철 간사의 개종 교육을 들었습니다. 교육이 끝난 후에 박O철 간사는 일부러 잠깐 자리를 비우고 부모님과 저와 개종이 된 자매가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자매는 저에게 자신이 개종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이 어떠했는가와 개종이 되고 난 지금은 어떠한지, 개종된 후 신천지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어땠는지 등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총 세 번 정도 제가 감금되어 있는 곳에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들은 개종당한 자매의 말을 들으며 그 자매 부모님의 마음에 공감하며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어머니는 저에게 “너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으니 친하게 지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육 중간에 박O철은 “개종교육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교육만 잘 받으면 거의 다 성공하는데 꼭 부모님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서 교육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엄마 아빠가 그냥 아침에 잠들어 버리고 하니까 그 사이에 애들이 도망가는 것이 아니겠냐.” 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박O철이 감금된 장소에 와서 교육한 횟수는 약 20회 정도 되며 임O기가 와서 교육한 횟수는 약 4-5회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 교육 할 때마다 3-4시간 정도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거의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8월 24일이 언니가 선생님으로 일하는 학교 개학일이라 언니는 수도원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뒤에 박O철 간사가 “이제 신천지가 틀린 것은 알았으니 밖에 나가서 후속교육을 받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O기와 박O철은 “후속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3개월 정도 이루어지는데 주O교회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서 교육을 받아야하고 후속교육을 받는 3개월 동안은 핸드폰, 인터넷 사용을 최대한 금하고 교육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가족들과 상의를 해서 집에 가도 되는데 그 이후에도 1년 정도는 토요일, 일요일은 주O교회에 출석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개종사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박O철은 저에게 “자매를 본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는데 내가 실패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임O기 전도사님과 박O수 집사님이 와서 자매가 개종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거다.” 고 얘기 했습니다. 박O수 집사는 바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연락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왔습니다.
 
박O수: 교육 들으니까 이제 마음이 어때?
구지인: (개종의사를 드러내기 위해) 처음에는 그냥 들었지만 듣다보니 틀린 것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제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의 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
박O수: 네 말을 들으니까 예전에 주O교회에서 3개월 교육을 듣다가 신천지교회로
도망가서 3년 정도 생활하다가 지금은 다시 신천지교회에서 나와서 부산 쪽에
서 이단 상담 사역을 하고 있는 자매가 생각난다. 걔도 너랑 똑같이 이야기
했거든. 자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부모님한테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거지. 이제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항상 확인해보고 해봐야 한다는 거지. 자매 통해서 가족들이 이제는 어떻게
되겠어. 다 예수님 하나님 믿을 수밖에 없다니까. 하나님이 자매를 버려서
신천지 이단에 보낸 게 아니야. 이런 교훈을 통해서 가족들 다 예수님 믿게
하려고 하는 거지. 언니가 교회 안 다닌다고 했지? 그럼 언니를 예수님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신 거야. 이번 주에 퇴소하고~ 여태까지
수고했어~
 
그리고 박O수 집사는 제가 없는 자리에서 부모님에게 저의 상태가 굉장히 좋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번 주 안에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O수 집사가 확인을 하고 간 뒤로 일주일 정도 박O철 간사가 다시 교육을 더 했습니다. 박O철 간사는 “내가 O신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개강을 하면 아예 저녁에 와야 하는데 내가 가정도 있고 해서 저녁 늦게 교육하러 오기는 곤란하다. 그래도 내가 교육을 시작했으니 내가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의 부모님은 박O철 간사가 돈도 달라고 하지 않으면서 희생적으로 저를 가르친다고 박O철 간사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돈벌이가 목적인 개종사업을 하는 실체를 알지 못 하고 속고 있는 부모님이 안쓰러웠습니다.
 
강제 개종 목사 임O기
 
제가 개종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임O기 전도사였기 때문에 교육이 끝나갈 때쯤 임O기 전도사가 특강 식으로 총 4번 정도 오게 되었습니다. 임O기 전도사는 “내가 너무 바쁘다. 신천지가 만날 고소하고, 이단 사역을 하면서 맨날 협박당하고 미행당하는 거라 정말 쉽지가 않다.” 고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임O기 전도사는 제가 교육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고 제가 집중하지 않거나 멍하게 있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자매가 지금 교육에 흥미가 없는 것 같고, 신천지가 틀렸다고 하는 말이 의심이 된다.” 고 했습니다.
 
저를 집으로 보내주기로 한 마지막 수업 때는 임O기가 맛디아 지파 자매(박O은)와 함께 저녁 늦은 시간에 치킨을 사가지고 와서 임O기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딸, 아들이 한명씩 있는데 아들이 딸보다 애교가 많아. 딸은 무뚝뚝 해.” 등의 이야기를 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해서 제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임O기는 부모님에게 후속 교육에 대해 “원래는 원룸에서 지내야하지만 돈도 많이 들고 집이 일곡동이라 교회랑 가까우니 집에서 다니라.” 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저는 부모님이 개종목사와 연락을 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몰래 사용하였던 임시 폰도 보게 되었습니다. 임시폰은 2G폴더 폰이었고 잠금장치가 된 캐리어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납치 당시 사용했던 아버지 차는 경찰과 신천지 식구들이 위치추적 할까봐 장성에 있는 큰 고모부 직장근처에 놔뒀었다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머니는 큰 고모부에게 연락을 해서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올 수 있겠냐.” 고 했습니다.
 
탈출
 
수도원에 감금 된지 43일째가 되는 날인 2016년 9월 3일 아침. 저희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도원 ‘사제관’ 방안에 있던 모든 짐을 정리했습니다. 큰 고모부는 저희 가족에게 “장성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 고 하였습니다.
 
큰고모부네 가족(큰고모, 큰고모부, 사촌오빠)과 저희 가족은 장성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큰 고모부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오히려 가족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서로 관심을 가지자.” 며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시간이 저녁 7:30분 정도 되었고 밖이 어두워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큰고모부네 가족들이 아직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제가 도망가도 큰고모부네 차에 붙잡힐 것 같아 도망가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티비도 보고 어머니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때에도 제 머리 속에는 ‘어떻게 탈출해야 하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도망을 갈까. 아니면 열매를 불러서 열매의 차를 타고 달아날까.’ 온갖 상상을 혼자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잠이 들면 정말 영영 탈출할 기회가 날아가 버릴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어머니의 뒤척거림이 잦아 들쯤 저는 일부러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엄마 반응을 지켜보았고 몹시 더운 것처럼 행동을 하며 거실로 나가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잠에서 깨지 않자 저는 언니 방으로 들어가 옷가지와 미리 챙겨두었던 가방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혹시라도 엄마에게 들킬까봐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해서 택시를 타고 나왔습니다.
 
2016년 9월 27일
 
구 지 인 (인)

<주윤 기자 ju-yun00@hanmail.net> (자료제공=강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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