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내가 사랑하는 나의 직업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가 사랑하는 나의 직업

심연수 (44세) M by Marie
기사입력 2017.06.07 21: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170531_144714918 c.jpg▲ 심연수 (44세) M by Marie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279  (02-2276-3265) 
 
1. 헤어디자인너가 된 계기가 있다면?

어릴 적부터 생각해 둔 꿈이 세 가지가 있었다.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백조의 호수라는 무용을 TV에서 보고 무용에 관심이 생기고 크면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는 남의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 해서 아버지가 커서 미용사가 되면 되겠다고 말씀 하신 덕분에 미용사가 되고 싶었고, 세번째는 중학교때 수학선생님이 수학을 너무 잘 가르쳐 주셔서 수학선생님을 꿈꿔왔다.
 
하지만, 발레리나는 학원을 다닐 만한 여건이 안 되었고 수학 선생님은 수학만 잘 해서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 포기했다. 대학입학이 좌절 되고 어머니는 재수를 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리 공부에 취미가 있었던 건 아니여서 부모님께 차라리 미용학원을 등록 해 달라고 말씀드렸고 미용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

2. 미용학원 다니면서 겪게 된 난관은?

나름 머리에 소질이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열흘 만에 내가 정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학원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한번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심각하게 조언을 해 주실 정도였으며, 동기들은 소질도 없으면서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아느냐는 듯 조롱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났다. 매일 아침 8시에 학원을 가서 밤 아홉시까지 연습하기를 4개월 동안 했다.
그런 노력하는 모습을 본 동기들은 조롱을 멈추고 기꺼이 도와주며 응원을 해 줬다. 다행히 함께 한 동기들과 자격시험에 한 번에 통과 했다.
 
미용학원에서 승승장구를 달리던 나는 미용실에 취직하면 바로 모든 걸 잘 할 수 있을꺼라 생각 했다. 하지만 쉬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용 학원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결국 취업한지 보름 만에 손톱이 다 빠지는 일이 생겼고 의사는 일을 하면 안된다는 말만 반복을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이것마저 그만 두면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일들을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내 의지는 나의 상황을 이길 수 있다는 오기를... 그래서 이를 악 물고 버텼다. 다행히 손톱은 자랐고 일도 적응 할 수 있게 됐다.

3. 영국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된 동기는?

원장님의 배려로 운 좋게 비달사순의 한국 첫 런칭 쇼를 참석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미용의 신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체계적인 교육을 많이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하나의 쇼크로 와 닿았다. 그 쇼를 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비달사순이 미용사들에게 질문을 요구 했다.
 
나는 질문을 할 것이 많았지만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질문을 하기가 무서웠다. 그 순간 여자미용사 한명이 그리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답변을 들었으며 비달사순이 영국으로 한 달간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느끼게 되었다.
 
그날의 패배감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막연히 외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체계적으로 바뀌기 시작 했으며 십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집에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안돼서 못나간다는 생각을 접고, 스스로 벌어서 충당 한다고 생각을 했으며 영어를 하지 못하면 더 고생한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영어학원, 저녁에는 메이크업과 미용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일과 같이 하기에 좀 벅차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나에게 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미치도록 하다 보니 미용 실력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돈도 모이기 시작했다. 일도 안정적으로 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남들은 굳이 유학을 나가지 않아도 이 정도면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라며 나를 안주 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결국, 계획대로 4년 만에 영국 행 비행기를 탔다.
KakaoTalk_20170531_144711441 c.jpg
 
4. 영국 유학 생활은 어떠했는지?
 
그리 꿈꿔 왔던 나의 영국행은 순탄치 않았다. 영국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다고 자신을 했던 나는 영국 음식이 맞지 않아 들어 간지 15일 만에 7킬로가 빠졌으며, 영국의 특유의 날씨에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다. 한국이 IMF가 터지면서 천정부지로 오르는 환율을 보며 망연자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법으로 하다 보니 사장의 노동력 착취가 심했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로서는 견딜 수밖에 없었다.
 
꿈에도 그리던 비달사순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다. 드디어 비달사순 코스를 수료한 나는 영국인 미용실에 취직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사람 하나 없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같이 경쟁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고비가 됐지만, 좋은 원장과 친구를 만들게 되어 영어도 늘고 미용 실력도 더 나아지기 시작했다.
 
4. 한국으로 돌아본 후 생활은?
 
3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들어오면 내가 원하였던 걸 모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벽이 부딪쳤다. 3년이라는 유학생활은 한국에서의 또 다른 커다란 공백기가 돼버렸다. 그동안 바뀐 많은 것들을 또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을 정신없이 방황 하던 끝에 용산 미군 부대 내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게 되어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15년을 일을 했다.
 
현재는 손님이 메리어트 호텔 내 미용실을 운영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아 지난 10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은 손님이 많은 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이 나의 또 다른 벽이 되었지만 이 벽도 또 넘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일을 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사실 일로 인해 겪게 되는 힘든 점은 내가 선택 한 것이기 때문인지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주위 사람들이 하는 상처 주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한다는 말, 할 일 없으면 미용 기술이나 배운다는 말, 공부 못해서 미용 한다는 말, 사적인 공간에서 쉽게 내 머리 어떠냐고 묻거나 그냥 머리 좀 해 달라는 말, 사치스럽다 혹은, 직업적 특성 때문에 사생활이 지저분할 것 같다는 말들이다.
 
나는 외치고 싶었다.
 
미용업계는 아무나 할 수는 있고, 할 일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은 세계라는 것과 공부를 못해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더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 사적인 공간에서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고 일을 하면 지불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일과 공부를 하느라 사생활이 지저분할 시간이 없다. 라고...
 
나의 길은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지루한 적도 없었다.
또한 이 길은 누구나 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수는 있겠지만 아무나 그 문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문을 두드릴 것이고,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 갈 것이다.


 
 
<저작권자ⓒ(주)뉴스앤뉴스 & newsnnew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top